※ POI 5시즌까지의 네타 있습니다.
※ 이 시리즈는 5시즌 이후의 이랬을지도 몰라-이랬으면 좋을텐데-하고 제 마음 속에 뜨는 대로의 적어가는 단편들입니다. 설정은 공유될 수 있지만 이어지는 내용들은 아닐 거에요(:3c
160628 1차 수정
Real life _part.2
by. 칡즙
삑.삑.삑─ 철컹!
호리호리한 그림자가 멋진 포즈와 함께 튀어나왔다.
"짠! 서프라이즈!"
그리고 뒤따라 오는 것은 시멘트바닥의 냉기를 머금은 서늘한 침묵 뿐. 뭐, 그럴 줄 알았지. 젠은 머슥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나 그 침묵도 잠시,
"컹!"
"베어!!"
"베어!!"
낮게 한 번 짖으면서 우다다다 달려나오는 베어를 향해 두 팔을 벌린다. 굿보이, 굿보이. 역시 너 뿐이야, 나의 섹시 가이. 그녀는 누군가의 말투를 흉내내면서 그 검고 커다란 몸집을 안고 한동안 뒹굴면서 우정을 만끽했다.
"그래서, 쇼는 어디있지?"
끼잉─ 베어는 앓는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돌렸다. 예상했듯이 그의 시선이 닿는 곳은 안 쪽에 딸려 있는 작은 방이었다. 몇 번의 경험 끝에, 그녀는 그 방 안 쪽의 광경을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젠은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면서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살짝 닫혀있는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젖히면, 역시나 예상과는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다. 어지러히 나열되어 있는 잡다한 기계장치들과 멋없고 단촐한 간이침대, 그리고 낡은 소파가 하나. 오늘은 소파 쪽이네.
"......."
젠은 푹 꺼진 소파에 깊게 몸을 파묻고 잠들어 있는 쇼를 보며 찬찬히 고개를 기울였다.
"오늘도 자네."
최근 그녀는 볼 때마다 늘 잠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보통 드라마에 나오는 특수요원들은 늘 자면서도 예민하고, 주변의 변화에 민감하고, 누가 몰래 침입하기만 해도 대번에 알아차리던데. 분명 예전의 쇼도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지금은─
"...쇼, 자요?"
젠은 목소리를 낮추고 쇼를 불러보았다. 그것은 마치 여기에 몸을 두고 혼이 빠져버린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죽은 걸지도 몰라. 처음 그 모습을 찾아냈을 때 젠은 그렇게 생각했다. 몇 번을 보아도 늘 헷갈렸기에, 젠은 쇼의 호흡을 확인하기 위해 손을 뻗어 그녀의 코 밑에 조심스레 가져다대었다.
"──────!"
그리고 젠의 손이 닿는 순간 쇼는 마치 파워 전원이 들어간 기계처럼 퍼뜩 눈을 뜨고 일어났다. 커다란 눈이 위협적으로 번뜩였다. 젠은 그 맹수의 시선에 놀라 숨을 삼키면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젠."
"안녕, 쇼. 해가 중천이에요. 이 잠꾸러기."
"또 여긴 어떻게 들어온거야...?"
쇼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얘 들이지 말라고 했잖아. 경비 제대로 안 할래?"
"오, 베어를 나무라지 마세요. 이건 제가 너무 훌륭한 스파이인 탓이죠."
"아니, 난 베어가 아니라.... 아니, 아니다."
쇼는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내저으면서, 이마에 붙어있는 몇개의 하얀 전극을 떼어냈다. 그게 뭐에요? 젠이 처음 물었을 때 그녀는 그것을 숙면을 유도해주는 무슨 뇌파 장치라고 대답했다. 굉장한 걸, 현대 문명. 나도 한번 써봐도 되요? 젠이 그렇게 요청했을 때 쇼는 젠도 찔끔 놀랄 정도로 무서운 얼굴을 하고 절대 안된다고 거절했다. 비싼 기계인가. 쇼는 욕심쟁이라서 자기 것을 건드리는 것에 민감하니까 뭐. 내가 이해해줘야지. 젠은 한껏 넓은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였다.
"이번 집을 발견하는 데는 한 달도 안걸렸어요, 대단하죠?"
뿌듯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젠을 보며 쇼는 다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넘버로서 만나고 헤어졌던 날 이후, 다시 처음 재회했을 때의 그 날이 떠올랐다.
- 쇼! 내가 찾았어!
- 내 개별 졸업 과제였죠. 사민 쇼 찾기!
그녀는 꾸준히 그 유명 재단의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해롤드가 어떻게 잘 처리해 놓은 것인지 그녀는 꾸준히 비싼 학비를 자동적으로 지불받고 있었다-, 고등학교 과정에 진급했고, 실제 졸업까지는 아직 몇 년 정도 남아있는 모양인지 교복차림이었다. 키는 그새 훌쩍 커서 쇼를 거의 다 따라잡았고, 아직도 성장 중이라며 곧 쇼를 뛰어넘을 것이라고 으스대었다. 학교를 다니는 중에도 끊임없이 국제 스파이가 되기 위해 자기 혼자 공부와 연구를 계속했고-친구 없었겠구만. 쇼를 그 말에 혀를 찼다.-, 어느정도 자신이 훌륭한 자질을 갖추게 되었다고 자신하게 되자 젠은 스스로에게 '사민 쇼 찾아내기'라는 졸업과제를 제시했던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는 정말 재능이 있어요. 쇼.]
기계의 말을 어느 정도 믿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결국 쇼가 설치해 둔 방범장치를 훌륭하게 파헤치고 쇼의 임시 은신처에 도달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도와줬어? 쇼의 날이 선 질문에 기계는 의뭉스럽게 대답을 회피했다. 거짓말은 못하지만 말을 돌릴 수는 있다 이거지. 여우같은 고철덩어리같으니.
"쇼? 무슨 생각해요?"
"음. 배고프다는 생각."
"그럴 줄 알았어요. 샌드위치 사왔으니까 나와요."
"좋아. 불법 침입을 용서하지."
"야호!"
조르르 달려나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쇼는 인이어가 박힌 귀를 지그시 누르면서 중얼거렸다.
"다른 거처 알아봐 줘."
[이 숨바꼭질은 돈이 너무 많이 드는 것 같지 않아, 쇼?]
난처한 듯 대답하는 목소리에 쇼는 코웃음을 쳤다.
"그럼 네가 잘 막았어야지."
◇
젠은 테이블 위에 쇼의 취향을 충분히 고려한 샌드위치를 꺼내며 그녀를 나오기를 기다렸다.
"이럴거면 나 앞으로 일절 전자기기 안 써. 산 속에 들어가버린다... 아니, 그건 내가 결정하는 거지."
방 안쪽에서는 쇼 혼자서 끊임없이 웅얼거리고 있었다.
"이건 애초에 합의된 사항이잖아. 예외는 없어. 이럴거면 내가 왜 너한테 내 안보를 양보했지? ........아냐, 있다가 얘기 해. 아, 시끄러워."
작은 속삭임이었지만 젠은 제법 귀가 밝은 편이었다. 애초에 이 안은 조용해서 거의 아무런 방해 잡음도 나지 않는 편이었고. 얌전히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니, 곧 쇼가 비척비척 걸어나왔다. 잠에서 방금 깬 모습답게 잔뜩 헝클어진 머리에 눈이 부신듯 찡그린 눈, 민소매 티에 트레이닝 바지 하나 뿐인 허술하기 짝이 없는 복장. 털썩 간이 의자에 앉아 간이 테이블에 놓이 샌드위치를 집어든다.
"얼마야?"
"내가 사는 거에요 쇼."
"어린애한테 밥 얻어먹는 취미는 없어."
쇼는 테이블 위의 지갑을 뒤적거리다가 당장 현금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눈을 찌푸렸다.
"...있다가 훔쳐서 줄께."
"도둑질은 나쁜 거에요. 쇼."
"그래서, 이번엔 또 어떻게 찾아온 거야? 너 진짜 누구한테 도움 받는 거 없어?"
쇼는 의심이 가득한 눈으로 젠을 흘겨보며 캐물었다. 흐흥, 젠은 어깨를 쫙 펼쳐보이면서 씨익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녀는 가방에서 큼직한 노트를 꺼내서 쇼 앞에 펼쳐보았다. 몇 번 정도 이런 상황이 반복될때마다 쇼는 어떻게 자신을 찾아냈는지 꼬치꼬치 캐물어 왔고-다음 거처의 보안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서-, 신이 난 젠은 아예 자신의 스파이 일지를 꼼꼼하게 정리해서 제출하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이 방법을 썼고요, 도청기는 여기에 설치하고. 여기서는 잠복하고..."
흠. 쇼는 우적우적 샌드위치를 씹으면서 그녀의 프레젠테이션을 경청했다. 어때요? 발표를 다 끝낸 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쇼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코를 찡그렸다.
"네 방법은 너무 올드해. 좀 더 스마트하게 하는 방법도 있잖아."
"난 아날로그가 좋아요, 쇼. 고상한 맛이 있잖아요."
"고상은 개뿔. 결국 남의 뒤 캐기인데 멋을 따져서 뭐한담. 펜 줘봐. 거기서는─"
그리고 결국 펜을 쥐고 젠의 노트에 글자를 더해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
"그럼, 나 갈께요. 쇼. 다음엔 너무 바로 사라지진 말아줘요! 곧 중간고사 시즌이라 바쁘거든요."
젠은 힘차게 손을 붕붕 흔들면서 모습을 감추었다. 피곤해. 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인이어의 전원을 눌렀다.
[안녕, 쇼. 나 말고 다른 여자랑 참 오랫동안 즐거워 보이던데.]
"엄밀히 말하자면 이건 네 탓이지. 왜 자꾸 쟤가 여기 기어들어오게 만드는 거야?"
[어머, 난 그녀를 도와준 적 없어.]
"도와준 적은 없지만 막지도 않았지."
쇼의 퉁명스러운 반박에 목소리는 흐흥-하고 웃어넘길 뿐이었다. 쇼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젠을 이 일에 끌어들이는 건 난 반대야."
[어라 왜? 그녀는 정말 재능이 있어요. 쇼. 미래가 기대되는 아이야.]
"음.... 너무 어리잖아."
[그럼 나중에 성인이 되면 괜찮다는 소리일까?]
"..."
가볍게 농을 섞어 건네오는 목소리에 쇼는 미간을 찌푸리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설명하기는 어려웠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확실했다.
"지금도 안되고, 앞으로도 안 돼."
[──────왜?]
목소리가 잠시 사이를 두고 조금 딱딱하게 물었다. 기껏해야 합성된 기계음인 주제에 그런 세심한 감정표현까지는 하는 이유를 도통 쇼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특별하니까?]
"아니, 걘 별로 특별하지 않아. 그래. 그게 이유가 될 수 있겠네."
그냥, 좀 특이한 취미가 있는 여자애인 거지. 쇼는 고개를 슬쩍 기울이면서 덧붙였다. 목소리는 대답하지 않았고, 쇼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특별한 자원이라면 얼마든지 더 효율 좋은 걸 찾을 수 있어. 워싱턴 쪽에 그 괴짜들도 있고. 나도 일단은 계속 일하고 있고."
[혼자서 말이지.]
"흠? 나로는 설마 부족하다는 건가?"
쇼는 입술을 끌어당겨 웃으면서 질문했다. 컴퓨터 앞의 캠카메라에 담기는 그 모습은, 한 때 누군가를 짓궂게 도발할 때에 그녀가 자주 보여주었던 그런 얼굴이었다.
[물론 자긴 완벽해.]
"흥, 당연하지."
[하지만 그 아이가 자기 옆에 있을 때 자기 심박수는 좀 더 안정적이고, 얼굴 근육도 좀 더 이완되는 것을 느껴. 목소리도 조금 높아지고, 특히 그녀의 스파이 일지를 갖고 토론할 때는 다방면의 신체반응 정보에서 좋은 신호를 받지.]
"..."
[네 말이 맞아. 나 역시 그 아이가 우리 일에 당장 크게 도움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
[하지만 그녀는 분명 너에게 도움이 될 거야.]
세계의 관점에서 볼 때, 그녀는 확실히 특별하지 않을지도 몰라.
하지만 너에게 있어 그녀는 특별하지.
─너에게는, 우리에게는, 그녀가 필요해.
달래는 듯한 부드러운 목소리가 길게 여운을 남기며 귓속을 울렸다.
"................."
쇼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그저 멀뚱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쳐다보았다. 미동도 없는 그 반응이 실제로는 자신이 들은 말을 해석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과정이라는 것을, 기계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런 채근없이 묵묵히 그녀의 반응을 기다린다.
"흠, 이봐─"
한참 후에야 쇼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심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난 어린애랑은 안 자."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거든, 이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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