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진짜 바꾸고 싶다... 티스토리 모바일 너무 구려.... 애초에 글쓰기도 안되고....
비공개 그림도 검색하면 다뜨고.... 난 널 믿었는데... 티스토리이ㅣㅣㅣ
No.1
칡즙
"Hey, 거기 들어오고 있는 회색머리 군견씨. 한가하면 나 좀 도와줄래?"
철창 문을 열자마자 들려오는 발랄한 목소리에 리스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고개를 들었다. 긴 목재 의자에 루트가 다소곳히 앉아 고개만 까닥이며 그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루트. 남에게 부탁을 할 때는 좀 더 정중하게 하는 편이 좋을 텐데."
그는 의자 손잡이에 집타이로 단단히 묶인 루트의 두 손을 흘끗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흐흥, 루트는 낮게 코를 울려 웃으면서 그의 요청을 묵살하고는 턱 끝으로 책상 위를 가리켰다.
"그 위에 나이프가 있어. 우리 자긴 정말 친절하기도 하지." "둘이서 무슨 놀이를 하든 상관은 없는데, 핀치 앞에서는 삼가 줘."
그에게는 이런 질 나쁜 걸 보여주고 싶지 않거든. 리스는 그렇게 덧붙이면서 루트의 손을 죄고 있던 결박을 끊어냈다. 플라스틱이 손목의 여린 살을 파고 들어 남은 새빨간 자국을 보고 리스는 가볍게 코 끝을 찡그렸다. 붉게 패인 그 깊이에서 묶은 이가 얼마나 열이 받았는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쇼가 네 손목이 아니라 목을 조르지 않은 것이 다행이군." "오, 그거라면 하고 갔어."
루트는 자유로워진 손으로 자신의 터틀넥을 슬쩍 내려 선명하게 보이는 붉은 손자국을 보여주었다. 어쩌라고. 리스는 혀를 차면서 그것을 무시했다. 그러나 어쩐지 기쁜 듯이 끊어진 집타이를 챙기는 루트의 모습은 집요하게 리스로부터 한심스러운 시선을 이끌어냈다.
"...어떻게 하고 싶은 거야, 루트."
리스는 무의식 중에 흘러나온 자신의 목소리에 놀라 살짝 눈을 찡그렸다. 집타이의 잔해에 정신이 팔린 루트는 뒤늦게 고개를 드느라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뭐가?" "쇼 말이야." "사민이 왜?" "흠... 그러니까..."
리스는 한동안 신중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좋게 포장할 대체표현들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별 소득을 얻지 못한 채 자신의 의문을 직접적인 단어 그대로 내뱉었다.
"연애라도 하고 싶은 거야?"
그리고 동시에, 언젠가 쇼가 그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나는 연애는 하지 않아.
언제부터인가 루트는 쇼에게 노골적으로 애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쇼의 차갑게 식은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그녀의 적극적인 공세는 보는 사람도 종종 감탄하게 만들었다. 주로 그 멘탈의 강인함에 대해서.
어찌되었든 보고싶지 않아도 계속 눈에 들어오는 이 두 사람의 관계는 리스의 마음 속에서 사소한 의문을 끄집어 내는 것이다.
과연 루트는 진심으로 쇼에게 그런 로맨틱한 감정을 바라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그건 과연 가능한 일인가?
"..."
리스의 질문에 루트의 표정이 미묘하게 찡그려졌다. 리스는 몇 가지 예상했던 반응과는 꽤 빗나간 그 모습에 살짝 눈썹을 들어올렸다.
"존. 사민은 소시오패스잖아."
루트는 '어쩜 이리도 모자란 사람이 다 있담'이라고 얼굴에 쓴 채로-그 모습은 꽤나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루트와 있을 때 대부분 그랬듯이- 차근차근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 자기가 그렇게 고차원적인 감정 활동을 할 수 있을만큼 기특한 여자가 아니라는 걸 알텐데." "......"
루트는 매일같이 애정공세를 퍼붓는 상대를 눈 하나 깜짝 않고 사정없이 깎아내리면서 덧붙였다.
"차라리 갓 태어난 신생아가 그녀보다 사랑이 뭔지를 더 알지 않을까?" "그 정도까지 무시하고 있는 줄은 몰랐는데..." "내가 하는 것은... 좀 더 심플한 거야."
루트는 손가락 끝으로 톡톡 의자 손잡이를 두드렸다. 리드미컬한 그 동작에서 즐거운 기분이 새어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단순하고, 좀 더 알기 쉽고, 확실하게 머리로 파악할 수 있는 이과적인 작업이지." "그게 뭔데."
슬슬 괜히 물어봤군-하고 속으로 후회하면서 영혼없는 태도로 묻는 리스를 앞에 두고 루트는 눈을 빛내면서 말을 이어나간다.
"서열정리야. 존." "서열." "예컨데 사민은 느린 차보다는 빠른 차를 좋아하고, 약한 과일주보다는 독한 술을 더 좋아하지." "그래서?" "유치원생보다도 못한 미개한 감정분류를 가진 그녀에게도 분명히 좋고싫음이라는 건 존재한다는 거야."
아까전부터 쇼한테 너무하는걸. 리스는 그녀를 조금 측은하게 생각하면서 루트의 말을 들어주었다.
"좋다와 싫다로 분류를 할 수 있다면, 그 비교를 쌓아가면서 순위를 매기는 것이 가능하지."
루트는 미소지으며 선언했다.
"나는 사민의 안에서의 내 순위를 높이는 작업 중이야." "..." "이 긴 작업이 끝나면, 언젠가 그녀가 제일 첫번째로 나를 꼽게 되겠지." "...방향이 잘못된 것 같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
리스는 루트의 손목에 남아있는 자국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한심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녀는 손가락 끝으로 점점 옅어져가는 손목의 자국을 사랑스럽게 문질렀다.
"중간점검이라도 해볼까?" "?"
루트는 리스에게 찡긋 윙크를 던지고는, 철창 쪽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Hey, sweetie."
철컹. 철문을 열고 들어옴과 동시에 들려오는 루트의 목소리에, 쇼는 불쾌한 듯 눈썹을 찡그리며 노골적으로 소리가 들린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루트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런 그녀에게 질문을 던진다.
"지금 여기에서, 누가 제일 자기 마음에 들어?" "뭐? 당연히 베어지."
쇼는 루트를 향해 시선 하나 던지지 않고 즉답했다.
"......"
"......"
쇼를 따라 들어온 베어를 미처 보지못한 루트는 어깨를 으쓱 해보이면서 리스에게 시선을 던졌다.
"...타이밍이 안 좋았네. 이 안에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 있었을 줄은." "솔직히 나랑 너 둘 중에서 고르라고 했어도 네가 원하는 대답은 안 나왔을 것 같거든." "자신만만인걸, 덩치 큰 강아지씨. 사민에게 사랑받고 있는 기분이라도 느껴져?" "덜 싫어하는 기분이라면 느끼지."
"뭔 거지같은 소리들을 하고 있는거야?"
루트와 존이 평소같지 않게 서로 말을 주거니받거니 하고 있는 모습에 의아해하며 귀를 기울이던 쇼는, 그 내용의 한심함에 혀를 차면서 둘의 대화를 싹둑 잘라버렸다.
"자기의 호불호 순위표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거야, 사민." "뭘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루트."
쇼는 자신의 발치에서 낑낑거리는 베어의 턱을 긁어주면서 단언했다.
"가장 짜증나는 1순위라면 단연 너야." "앗, 정말?" "그래, 전 지구를 통틀어서." "그거 정말 로맨틱하다. 다시 한 번만 말해줘."